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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농도_미셀 꽈스트

작은씨앗 2021. 12. 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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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농도

 

● 자신의 제한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십자가의 면적도 역시 좁았었다. 시간도 공간도 제한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하신 말씀도 적었다. 그러나 많 은 고통과 함께 무한한 사랑도 그곳에 있었다.

 

● 자기를 온전히 내놓으면서 행동하는 것은 곧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하나의 투쟁이다. 따라서 이것도 하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세상 구원에 이바지하는 ‘보람있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반면 자기중심적으로 흘러 이 세상에 분열을 가져오는 행위는 죄를 형성한다. 사도적 생활에서 긴장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바치고, 의무수행에 있어서의 어려움, 제한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무거움, 이것들은 사도적인 활동 에 풍요한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이다.

 

● 우리의 생활에서 긴장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긴장을 너무 크고 괴로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며, 특히 이것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의 신앙과 사랑에 달 려있다.

 

● 우리는 모든 것을 혼자서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 서 우리에게 해야 할 것을 주실 때에는 이것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과 방법까지도 함께 주신다. 그러므로 충실히 했음에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버지께서 ‘우리들이 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 리는 초조하고 낙담하는가?

 

● 이러한 순간에, 이러한 상황에, 이러한 사람에게는 내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 믿지 않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진정한 동기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에게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형제들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원의보다는 때로는 깨닫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오만, 지배욕, 은폐된 생활에서 혹은 복잡한 가정생활에서 벗어나려는 구실이 개입될 수도 있으 므로 이런 것이 활동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우리 활동의 양(量)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농도에 있는 것이다.’

 

● 활동범위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해도 우리들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는 인류의 전반적인 상승에 참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분 안에서 행동한다면 우리들은 아버지의 나라를 건설해 가는 것이다.

 

● 우리가 참여하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활동분야가 다양하고 바쁘면 바쁠수록 우리는 더욱 더 유일하시고 모든 것의 근원이신 예수 그 리스도를 관상하기 위해 멈출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우 리들의 활동의 깊은 통일을 발견하고 그 통일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다.

 

● 만일 참여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분산된다면 이것은 일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일 하나하나에 나를 완전히 쏟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을 때 일에 전심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 존재의 한 부분은 해야 될 일을 생각하나 다른 부분은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유감스러운 감정을 품고 있고, 또 다른 부분은 지 나치게 과거만을 생각하며 집착하는가 하면 또 미래만을 꿈꾸며 성급히 나가려는 부분이 있을 때 우리는 무슨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반성할 줄을 알아 내적인 일치를 갖게 된다면 우리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훌륭하고 완전하게 할 것이다. (미쉘 꽈스트, <<그분과의 만날 약속>> 중에서)

 

● 삶이 가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함으로써 자유로이 형제들과 하나가 되고, 무한한 사랑이신 하나님과 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매일 조금씩 더 내면의 목소리가 형제를 향해 “네가 고통받을 때 나도 아파”라고 소리지르지 않는다면, 자신을 속이지 않고서야 어찌 우리가 사랑을 하고 있으며, 참된 삶의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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