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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돼지의 맑은 두 눈_에르네스또 까르데날카테고리 없음 2021. 12. 26. 16:26728x90반응형SMALL
돼지의 맑은 두 눈
세상의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 있다. 그런데 우리의 지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문에도 같은 점과 다른 점, 통일성과 다양성이 들어 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지문은 모두 삼위일체의 도장이요, 한 분이며 동시 에 세분이신 하나님, 즉 끝없는 다양성이요 또한 다양성 속의 단일성이신 하나님의 도장이다.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렇듯이, 전자(電子)로부터 은하수에 이르 기까지 모든 존재도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이다. 완전히 똑같이 닮은 두 마리의 애벌레가 없듯이 똑같은 두 개의 원자도 없고, 겉으로 보기에 똑같아 보이는 밤하늘의 별 가운데 똑같이 닮은 별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하나이며, 문학 특히 시의 기능은 삼라만상의 표지인 이러한 통일성, 이러한 보편적 형태를 발견하는 일이다.
시는 사물들이 나타나는 다양성 속의 통일을 보여주는 것이니, 시에서는 산들이 수양처럼 뛰고, 언덕이 어린양처럼 뛰놀며, 당신의 머리털은 가라 하드산맥 속을 헤매는 염소를 닮는다. 밝은 달밤에 울어대는 개구리와 귀뚜라미들의 합창, 많은 목소리들, 짐승들의 높고 낮은 울음소리들―멀리서 들리는 닭 울음, 암소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를 비롯한 농장에서 들리는 모든 다른 신비로운 소리들―이런 모든 것은 수도자들이 합창으로 바치는 매일매일의 거룩한 예식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언어로 부르는 찬미가요 기도이다.
새들은 노래를 부름으로써 성부께 일용할 양식을 요청하며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새들은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 밖의 다른 짐승들은 각기 제나름대로 주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모든 예술품은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언하는 별들도 또한 그렇다. 따라서 모든 진정한 예술품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기도다.
그리고 예술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특별히 종교적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은 근 본에 있어서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삼라만상 가운데, 심지어 돼지의 맑은 두 눈에서도 드러난다. 모든 것은 본질상 깨끗하고 순결한 것이니, 폐결핵 환자의 침도 카리브해의 맑은 바닷물만큼 깨끗하다(제노아의 카타리나 성녀가 병자의 상처에서 흐르는 고름을 빨았던 것이나 성 루이스 대왕이 문둥병자의 헌데에 입을 맞 췄던 것도 다 이런 까닭에서다).
두루미나 벌레들이나 깨끗하고 순결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물질은 투명하고 성스러우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오직 죄만을 빼고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 사람의 타락한 본성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은 순결하다. 풍경은 순결하다. 타락한 인간의 혼란스러운 욕망과 욕구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짐승은 순결하다. 자만심이나 욕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인군자가 될 때, 즉 혼란스러운 욕망과 욕구, 자만심과 욕정을 모두 끊어버렸을 때, 그의 평온한 영혼은 숲처럼, 호수 처럼, 벌레나 두루미처럼 순결해진다. 한 마리의 짐승 또는 한 그루의 나무는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생각(곧 하나님의 본질 자체, 왜냐하면 하나님 속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분 의 본질이니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며, 하나님이 전하고 싶은 말을 모자람이나 지나침이 벗이 명명백백히 그대도 전달하는 하나의 말씀이다.
모든 물건은 완전한 복종의 표현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자신 속에서 뚜렷이 드러낸다. 예언자 바룩(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제자)의 말대로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은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무생물조차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사람의 육신도 또한 성스럽고 거룩하고 죄를 모른다.
그러므로 욕망이 없는 곳에는 죄가 없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는 무한한 순결 자체이신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증인으로, 마음내키지 않는 공모자로, 우리 죄의 희생자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하나님의 존재는 삼라만상 안에 들어 있는 까닭이다.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을 억압하는 일이다.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학대하는 일이다. 저주받은 사람은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사람이며 따라서 스스로에게 커다란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다. 죄를 짓는 것은 우리의 자유를 행사하는 일이 아니라 그 반대로 우리의 자유를 포기하는 일이다. (에르네스또 까르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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