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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절대의 믿음_함석헌좋은글 2022. 1. 8. 19:50728x90반응형SMALL
절대의 믿음
● 믿음은 자득하는 것,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지 누가 가르쳐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아무리 사랑해도 자식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아무리 사랑해도 자식 에게 믿음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 만일 가르쳐 주어서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부모가 자식이 망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겠는가? 또 자식이 부모에게 구해다가 바칠 수도 없다. 구해다 주어서 되는 것이라면 어느 자식이 부모가 믿음 없이 멸망으로 가는 길을 가만 보고 있기만 하겠는가? 믿어도 내가 바라는 것이고 버려도 내가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맞아들이고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고 했다. 사람 가르치는 것을 평생의 사업 으로 삼으셨던 공자님도 “분이 나서 하지 않거든 가르쳐 주지 마라”고 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 하는 것도 이러한 뜻이 있다. 거룩한 것 자체, 진주 자체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또 그 받는 개나 돼지를 위해서도 그렇다. 오늘날 종교가 힘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리의 전달이지 진리의 체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 절대의 믿음은 믿어지는 믿음, 위에서 주시어서 받아서 되는 믿음, 상대의 믿음은 믿자는 믿음, 믿어질 줄을 믿고 힘쓰는 믿음이다. 사람이 누구나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자는 없다. 믿자는 믿음이지. “주여, 내가 믿으니 내 믿음의 부족함을 도우소서!” 이대로 사실이다. 그러나 믿자는 믿음만으로는 또 아니된다. 종당엔 믿어지는 믿음에 가야 한다. 그러나 거기는 아무도 갔다 할 수 없다. 내 믿음을 내가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벌써 타락이다. 믿어지는 믿음은 믿는 줄도 모르는 믿음이다. 거기는 가서 가지는 것이 아니요, 가지 못하면서 갈 수 있는 믿음으로 가지는 곳이다. 가지 못함으로 가는 감이다.
● 우리는, 믿는 자는, 그러한 멸망의 운명을 가진 자가 아니다. 우리는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인생을 비관하는 자가 아니다. 역사를 부정하는 자가 아니다. 우리는 눈에 뵈는 어떤 모순이 있어도, 어떤 고난이 있어도, 어떤 파란이 있어도 긍정한다. 믿고 들어간다. 세계는 존재 할 만한 의미가 있고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고 역사는 지을 만한 희망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잃어도 잃지 않는 줄 알고, 패해도 패 아닌 줄 알고 죽어도 죽지 않는 줄 안다. 그리하여 영혼의 구원을 얻은 자다.
● 개인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새로남의 체험 없이 인격의 보다 높은 새 통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새로남의 체험에 없어서 아니 되는 중요 한 요소는 속죄의 체험이다. 지난날이 잘못됐다는 의식이 남아 있는 한 은 새로남은 없고 인격은 항상 분열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 든지 내 죄가 씻어져 버렸다는 확신에 들어가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평안과 기쁨이 오고 새 영감에 차게 된다.
● 중요한 것은 내 속에 인을 깨닫는 일이다. 하나님의 씨를 보는 일이다. 이것은 죄를 지으려 해도 지을 수 없고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고 타락해도 더러워지지 않는 생명이다. 죄를 짓고 더러워지고, 타락하고 죽는 것은 ‘참 나’가 아니요 나의 과피과육(果皮果肉)을 나로 알고 집착하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숭아의 껍질과 살을 달라는 대로 아낌없이 주고, 속의 씨를 찾아내듯이 나의 ‘참 나’ 아닌 부분을 읽는 대로 내버려 두고 그 속에 변하지 않는, 절대자와 동질이요 한 모습인 ‘참 나’를 발견하고 믿는 것이 구원 얻는 길이요 해탈하는 방법이다. 어떻게 타락한 개인이라도 이 인은 품고 있고 어떻게 더러운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도 이 인은 남아 있다. 자가개조(자아개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누구나 다 속에 생명의 씨를 품고 있지만 하나님의 모습대로 되는 사랑의 원리를 품고 있지만, 또 거기에 악한 것도 같이 있다. 그걸 어떻게 공부해서 내 속에서 그 악한 뿌리를 아주 잘라 버리고, 참 사랑의 그대로 하나님의 모습대로인 그 생명으로 바로 설 수가 있을까. 이것이 기독교의 근본인데……참 어려운 일이다.
● 진리는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체험은 몸으로 앎이다. 몸으로 하기 전엔 참이 아니다. 마음이 옹근[統一] 것이 함[行動]이요, 함이 맺힌 것이 몸이다. (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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