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
사람의 운명은 모르는 일입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일생을 끝내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대로 평생을 삽니다. 그 불행한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미움받으며 업신여겨지며 살아가는 거지.
7시 반쯤 목욕탕에 갔더니 모녀 세 사람의 여자거지가 와 있었습니 다. 세 사람 모두 살갗이 검고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칼은 엉클어지고 까실까실했습니다.
내가 갔을 땐 탕에서 나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남자 가 입는 윗도리로 너덜너덜해진 걸 깁지도 않고 빨지도 않아 냄새나는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되는 분은 단지 빨간 속치마와 기름때가 묻은 국방색 외투를 입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들을 보자 대뜸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오는 사람 오는 사람 차가운 눈빛으로 흘려보았습니다. “어머나! 이건, 이건 훌륭한 손님이네!” 하며 큰소리로 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뭐라 떠들어도 입을 다문 채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탕에서 나와, “야아, 이것 봐, 구질구질하게시리, 밖에 나가 입어!” 하고 밀어내듯이 닥달했습니다. 그러자 중 3학년 쯤 되어 보이는 언니가 “아니에요. 이는 없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이가 옮을까봐 나가라고 하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누가 이가 있다고 했나. 떠들면 가만 안 둘 테다. 이 멍청아!” 하고 아까번 아주머니가 화를 내며 눈을 흘겨보며 밉살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가 곧장 어머니를 향해 “엄마, 빨리 입어!”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래” 하고 어 쩔 수 없는 듯이 대답하고는 얼른 서둘렀습니다. 옷을 모두 입자 세 사람은 말없이 나갔습니다. 어머니 되시는 분은 약간 비틀거리는 듯 보였습니다.
나는 내가 가난한 때문인지 이런 사람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옵니다.
모양새나 옷차림이 더러울 뿐인데,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업수이 여겨지고 미움받는 것입니다. 같은 인생이면서 남에게 미움받고 멸시당하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이겠어요.
거지가 될 지경까지 왔다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이 있었겠어요. 죽어버렸으면 싶었던 때는 없었을까요? 분명 몇번이고 몇번 이고 있었겠지요. 그런데도 살아온 것입니다.
나는 세 사람이 나간 뒤를 슬픈 마음으로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오늘밤은 어디서 잘까요? 먹을 것은 있을까요? 내일도 또 어디선가 누구 한텐가 미움받으며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엾기 그지 없습니다.
(재일 동포 소녀 스에꼬의 일기, 1955년 4월 23일)